랩이 캡, 힙합이 밥 …42명이 book돋운 한국힙합

음원 휩쓸고 방송 프로까지 나온 대세 트렌드…책으로 엮은 송명선씨의 '힙합人 만남' 얘기 들어보니

최종수정 2016.08.12 16:26기사입력 2016.08.12 11:42
<힙합하다>의 저자 송명선 작가를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아시아경제 권성회 기자]힙합음악은 이미 대세가 됐다. 엠넷(Mnet) ‘쇼미더머니’나 ‘언프리티 랩스타’가 인기리에 시즌제로 방영되고 있다. 방송 중 나온 곡은 다음 날 음원 차트 정상에 오른다. 제이티비시(JTBC) ‘힙합의 민족’에서는 ‘할머니’들까지 랩을 소화했다. 이렇듯 힙합이 한국에 소개된 지 오래 됐고, 어느덧 대중들에게 가까워졌지만 ‘한국힙합’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결과물은 없었다. 지난달 25일 출간된 <힙합하다: 한국, 힙합 그리고 삶>(안나푸르나, 이하 <힙합하다>)은 한국힙합을 만들어 온 42명의 아티스트들의 ‘힙합인생’을 다룬 책이다.

◆라이프 타임라인 통해 아티스트들의 삶 그대로 기록=저자 송명선(30)씨는 당초 박사논문 준비를 위해 힙합 아티스트들을 만났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를 위해 힙합을 주제로 한 연구를 진행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는 “오래 준비해야 하는 만큼 좋아하는 것을 연구하자고 생각했다. 2014년 5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33명의 국내 힙합 아티스트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힙합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고 말했다.

송씨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을 만나기 위해 막무가내로 덤볐다. 그는 “정규 1집을 발매했거나 상응하는 경력을 가진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했다. 메일을 보내기도 했고, 페이스북으로도 연락했다. 직접 쓴 손편지를 공연장에서 전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티스트들에게 주문한 부분은 ‘편안하게 인생을 얘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송씨는 스케치북을 주고 아티스트들이 직접 자신의 삶을 기록하도록 했다. 그는 “제 나름대로 ‘라이프 타임라인’이라는 이름을 붙여봤다. 인생에 있어 중요했던 순간들, 힙합과 관련된 기억들을 시간순대로 기록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기록들을 토대로 ‘한국힙합은 무엇인가' ‘자신에게 힙합은 어떤 의미인가' 등의 질문들을 던졌다.
송명선 작가는 아트스트들에게 스케치북을 주고 직접 자신의 삶을 기록하도록 했다.
논문을 위한 자료가 책으로 출간된 건 송씨의 의지뿐 아니라 아티스트들의 권유 덕분이기도 했다. 송씨는 “인터뷰를 한 아티스트들이 ‘웹페이지나 블로그 등을 통해서라도 공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출간 기획을 세우면서 인터뷰를 더 진행했다”고 밝혔다. 논문은 랩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래퍼뿐 아니라 디제이(DJ) 등 다방면의 아티스트들을 만나고 싶었다. 포토그래퍼 부바(Booba), 아트 디렉터 로우 디가(Row Digga)가 그 예다. <힙합하다>는 논문과 달리 순전히 아티스트들이 기록한 ‘삶과 힙합’만을 실었다.

1, 2권으로 나뉜 책 표지는 각각 은색과 금색으로 ‘블링블링’하다. 첫 장에는 2012년 발표된 제리케이(Jerry.k)의 노래 ‘위 올 메이드 어스(We All Made Us)' 중 딥플로우(Deepflow)의 가사가 나온다. 내용은 ’노란 피부에 심장은 검은 이들‘이 지금까지 한국 힙합신을 만들어 온 과정을 담고 있다. 이를 늘려 놓은 것이 <힙합하다>로 볼 수 있다. 책 제목 <힙합하다>는 2011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투 올드 힙합 키드>에 나온 제이제이케이(JJK)의 대사 ’우리 모두 힙합합시다’에서 따왔다.

◆힙합이 국내에 전파된 과정에 대한 기록 돋보여= 42명의 아티스트들이 말하는 ‘한국힙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가리온의 엠시 메타(MC Meta)는 1996년쯤 PC통신 흑인음악 동호회인 블렉스를 통해 힙합을 알게 됐다.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하면서 나찰과 가리온을 결성했다. ‘힙합 1세대’의 탄생이다. 가리온을 보고 자란 아티스트도 많다. 더 콰이엇(The Quiett)은 메타의 공연을 보고 본격적으로 힙합 신에 뛰어 들었다. 미국과 같은 해외서부터 힙합이 전파되기도 했다. 타이거 제이케이(Tiger JK)는 어릴 적 이민 간 미국에서 힙합에 매료된 뒤, 한국에 돌아와 국내 가요시장에 힙합을 알리기도 했다. 송씨는 “힙합이 한국에 전파된 역사성과 지역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아티스트가 ‘외환위기’를 언급했다. 음악을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길을 택하는 것인데, IMF 시대가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경우가 많은 게 아이러니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아티스트들은 한국힙합을 ‘자신의 삶을 녹여내는 음악’으로 얘기한다.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의 최자는 “힙합은 사람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랩에서는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느낌이 있어서 정말 매력적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디제이 렉스(DJ Wreckx) 역시 “음악을 통해 내가 살아 온 인생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또 듣는 사람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을 때 위로가 되고 싶어요”라고 서술했다.

<힙합하다>는 42명의 힙합아티스트들의 생생한 기록이 담겨 있다.(사진=안나푸르나 출판사 페이스북)
◆힙합은 ‘즐거움’…랩뿐만이 아닌 문화 자체로 이해됐으면=그렇다면 저자인 송씨에게 ‘힙합’이란 무엇일까. 송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3년 동안 살았다. 송씨는 “쿨리오(Coolio)의 ‘갱스타스 파라다이스(Gangsta's Paradise)’를 들었다. 가사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비트에 홀렸던 것 같다”며 힙합에 빠지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힙합은 가장 즐거움을 주는 존재이자 또 다른 내가 있게 할 수 있는 문화 혹은 삶의 방식”이라고 답했다.

송씨는 ‘한국힙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찾는 과정이다”면서도 “한국인이 혹은 한국에서 만들어가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한국어 가사, 사운드, 그리고 음악이 만들어지는 환경과 소비되는 과정 모두 한국힙합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디지(Deegie)의 말을 빌려 ‘불안이 만든 음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송씨는 “사회문화적 혹은 개인적인 불안감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이 한국힙합”이라고 부연했다. 한국힙합을 “안 좋은 스펙을 가졌지만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게 만들어 준 것”으로 표현한 도끼(Dok2)의 말과 연결된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힙합의 미래는 무엇일까. 송씨는 “힙합이 랩으로만 이해되지 않고 문화 자체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래퍼인 엠시(MC) 말고도 디제이, 비보이나 비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도 함께 주목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송씨는 5~10년 뒤에 한국힙합에 관련한 다큐를 제작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힙합 말고도 다른 문화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싶다”며 “젠더나 다문화에 관심이 많은데, 한국 내 다문화여성이 국내 미디어에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싶다.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힙합을 하는 모습도 기대된다”고 전했다.

권성회 기자 street@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스크랩 댓글0

프리미엄 인기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