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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 KTX 승무원 12년 매듭 푼 오영식, 남북철도 연결 70년 매듭 풀까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52초

전대협 의장에서 과일노점상까지 사회적 약자, 서민의 삶 주목…정치력 정무감각 뛰어나 평화체제 마중물 적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2년 동안 끌어온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단 166일이면 충분했다.


바로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아픈 손가락'인 해고 승무원 문제를 해결한 오영식 사장 얘기다. 그는 지난 2월 사장 취임 당시 "사회적 대타협에 앞장서겠다"면서 코레일 내 금기어였던 KTX 해고 승무원 고용문제를 꺼냈다. 단순한 선언적 구호가 아니었다.

취임 직후 노사 간담회를 열고 KTX 해고 승무원 고용문제의 해결을 약속했다. 그로부터 6개월 후인 지난 21일 코레일 노사는 KTX 해고 승무원 180명을 특별채용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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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지난 2006년 정리해고된 전 KTX 해고 승무원들은 내년까지 단계적으로 다시 일터에 복귀할 수 있게 됐다. 오 사장의 뚝심과 결단이 꼬인 매듭을 풀어낸 결정적인 힘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특별채용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정치적 부담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오 사장은 "지속돼 온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당사자 고통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합의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공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치적 부담에도 그가 강단있게 해고 승무원 문제를 추진할 수 있었던 건 1992년의 소중한 경험 덕분이다.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제2기 의장을 맡았던 그가 정작 '인생 역정(歷程)'의 전환점으로 꼽는 시기는 과일 노점상을 했던 199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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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88년 전대협 2기를 이끌면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됐지만, 그의 앞길에는 '꽃길'이 놓여 있지 않았다. 1992년 가을, 수배와 투옥 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삶의 현장에 주목했다. 그는 거리에서 과일을 팔면서 서민과 호흡했고 그들의 애환을 직접 보고 느꼈다.


이런 경험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 중요한 것은 긴 호흡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불꽃 같은 청춘'을 보냈던 오 사장에게는 중요한 교훈이었다. 1985년 고려대 법대에 입학할 때만 해도 그의 꿈은 법조인이었다.
하지만 민주화의 열기가 들불처럼 타오르는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100만 학도'의 중심인 전대협 의장 자리에 섰다. 당시 경험으로 대중과 호흡하는 능력, 기획력, 정무적 감각을 길렀다.


학생운동 지도자의 공통된 고민은 '선명한 구호'와 '투박한 해법' 사이의 간극이다. 오 사장이 과일 노점상 생활과 대학원 생활을 거쳐 현실 정치에 뛰어든 배경이다. 그를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발탁한 인물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오 사장은 2003년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승계하면서 16대 국회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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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 나이에 의정활동을 시작한 그는 서울 강북갑에서 17대, 19대 총선에 당선되며 중진으로 분류되는 3선 고지에 올랐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을 지내면서 탄탄한 정치항로가 열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 탈락의 아픔을 맛보았다. 이른바 정세균계로 분류됐던 오 사장은 특정 계파 공천배제 논란 속에 출마의 기회를 잃었다.


오 사장이 시련을 경험할 때마다 아내는 그의 곁을 든든하게 지켰다. 1987년 노래동아리 가을공연에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뒤 1994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오 사장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 생계는 사실상 아내가 책임졌다. 10년 간 간호사로 일하면서 두 딸을 키웠고, 오 사장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오 사장은 아내의 믿음과 지원을 토대로 정치 인생의 항로를 개척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1967년생인 오 사장은 이제 50대 초반이다. 자신의 역량을 드러낼 시간은 충분하다. 기회가 왔을 때 결과로 화답하는 것은 그의 몫이다. 정치적 부담에도 오로지 사회적 대타협 한 곳만 보며 해결한 KTX 해고 승무원 문제가 그렇다. 이번 합의는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되살아나는 문재인 정부의 고민을 풀어줄 모범답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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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앞에는 또 다른 막중한 과제가 놓여 있다. 남북철도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이다. 한반도에 평화 무드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끊어진 남북의 철마 연결은 관심의 초점이 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민감성, 북미관계의 복잡성 등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과제다. 여야의 초당적 협력을 끌어내야 사업 추진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와의 긴밀한 협력은 기본 중 기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오 사장의 남다른 인연은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과 오 사장은 전북 정읍 출신이다. 두 사람은 정읍 신태인초등학교 4년 선후배 사이다. 17대 국회와 19대 국회에서 함께 의정활동을 한 인연도 있다. 긴밀한 소통이 가능한 관계라는 의미다.


코레일 사장 임명 소식이 전해졌을 때 '안성맞춤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오 사장은 자신을 향한 기대의 시선에 화답할 수 있을까. 그는 남북 평화체제의 마중물을 마련하는 역할,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또 하나의 전환점을 준비하고 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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