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요일에 보는 경제사]조선의 개항을 불러일으킨게 '모비딕'돌풍 탓?

동해안 포경업이 바꾼 구한말 개항의 역사

최종수정 2017.02.17 11:06기사입력 2017.02.17 10:34 이현우 디지털뉴스본부 기자
소설 모비딕을 영화화한 '하트 오브 더 씨'의 모비딕(사진= 영화 '하트 오브 더 씨' 캡쳐)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이현우 기자]지난 1995년 국보로 지정된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는 석기시대 사람들의 고래잡이 모습이 잘 묘사돼있다. 우리나라 동해안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고래잡이로 유명한 곳이었고 19세기 중엽부터는 전 세계 포경선단이 몰려와 고래잡이가 크게 성행했던 지역이다.

특히 1850년대부터 밀려들어온 미국 포경선단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방향도 뒤바꿨다. 러시아와 영국이란 당대 최강국들의 분쟁지구로 분류돼 좀처럼 다른 서양 열강들이 손을 대지 못하던 한반도 지역에 개항의 물결이 시작된 것은 모두 이 고래잡이배들의 영향이었다.

고래가 조선의 운명을 뒤바꾸게 된 것은 1849년,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대규모로 발견된 이후로 알려져있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금광을 찾아 몰려든 포티나이너(forty-niner)들의 열풍이 가라앉은 후, 이 지역은 미국의 태평양 진출 기지로 활용됐으며 포경업이 크게 성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포경산업의 인기는 1851년 출간된 유명 소설인 '모비딕(Moby Dick)'을 통해서도 실감할 수 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나온 고래 모습(사진=두산백과)
특히 우리나라 동해안 일대는 혹등고래, 향유고래가 많은 고래 어장으로 유명했다. 일년동안 북극과 남극을 오고가며 사는 고래들은 남극으로 가기 전, 한반도와 일본에 둘러싸인 지중해 형태의 동해안 지역에서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새끼가 어느정도 자란 이후에 다시 남극을 향해 내려가기 때문에 한류와 난류가 만나 어족도 풍부한 동해안은 고래들에게 중간기착지로 제격인 곳이다.
이 고래를 쫓아 미국을 비롯해 많은 서구 열강의 포경선단이 몰려들었고 이 지역의 수요가 높아지자 미국 정부는 일본을 1854년 강제개항 시켜 기항 거점까지 마련했다. 많은 선단이 몰려들면서 동해안에서 난파하는 포경선의 숫자도 늘어났으며 이중 많은 미국인 실종자가 당시 조선의 동해안 앞바다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곧바로 조선조정으로 보고됐지만 당시 개항 이전이었던 조선에서는 최대한 이런 난파 실종자 문제를 덮으려고 했다. 대부분 생존자가 발생하면 미국에 직접 선원들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으로 보내버렸다.

19세기 중엽 포경선 모습(사진=위키피디아)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자국민 실종자에 대한 수색과 귀국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이후 모험선단으로 평양에서 주민들과 충돌했던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 군민들에 의해 1866년 7월에 불탄 것까지 알려지면서 미국 정부는 진상 조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갔고, 결국 이 일은 1871년 신미양요의 빌미가 되었다.

1866년 이후 상황은 매우 복잡하게 흘러갔다. 러시아가 처음으로 원산 일대로 함대를 출정시켰고 평양에서는 제너럴셔면호 사건이 발발했으며, 프랑스군은 자국민 선교사들이 살해당한 병인박해를 빌미로 한강을 거슬러와 조선 군선들을 박살내고 다시 물러나 강화도를 점령하는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1850년대부터 포경업으로 높아진 한반도에 대한 관심은 1860년대부터 노골적인 침략으로 이어진 셈이다.

신미양요 때 노획한 조선군기를 함상에 걸어놓은 미군 모습(사진=한국근현대사사전)
당시 조선조정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쇄국정책을 고수하고는 있었으나 내부적으로 태평양을 너끈히 건너와 고래를 잡아대는 이 미국의 증기선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다. 흥선대원군은 평양에서 가라앉은 제너럴셔먼호를 건져내 증기기관을 복제하려고 했으며 10개월만에 복원에 성공했다고 알려져있다. 이 엔진을 이용해 증기선 3척을 건조한 후, 이를 강화도에 배치했고 시범운행과 화포 사격도 성공했다고 승정원일기에 기록돼있다.

이후 조선의 개항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열강의 고문단들은 일본을 움직인다. 1874년 대만 출병 당시나1875년 운요호 사건 당시 일본은 소수의 근대식 병력만을 가진 소국에 불과했지만 이런 외교적 도박을 벌였던 것에는 모두 서양에서 온 고문단들의 역할이 컸다고 알려져있다.

디지털뉴스본부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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