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글쓰기 기초 특강⑤]왜 말 잘하는 사람이 글을 못 쓸까

말하는 노하우와 글쓰는 노하우는,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

최종수정 2017.03.17 08:54 기사입력 2017.03.17 08:21 이상국 디지털뉴스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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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글쓰기와 말하기는 다른 것이다.

말은 잘 하는데 왜 글은 못쓰지? 그렇게 비난할 필요도 없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다른 기술이며 다른 능력이다.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이라는 책을 쓴 사이토 다카시의 말이다.

말과 글의 차이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문명(文明)은 글이 밝힌 역사를 의미한다. 그 이전의 말만 있던 시절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문화(文化)는 인간이 글을 쓰면서 바뀐 것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글이 생긴 이후 문(文)은 총칼을 쥔 무(武)를 무릎꿇게 한 채 2천년을 통치해왔다.

원래 스토리텔링은 말하기였다. 그런데 문(文)이 득세하면서 글쓰기로 바뀌었다. 말하기 시절의 화석(化石)으로 남은 '스토리'가 바로 신화-전설-민담이라 할 수 있다.

문(文)은 스토리텔링을 빨아들이면서 거대한 스토리문화를 만들어냈고, 학문이나 교양 전체를 가리키는 문학(文學)과 인문(人文)이라는 개념을 번성시켰다. 물론 문의 시대에도 '말'은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은 문(文)에 복속한 종노릇에 가까웠다.

그 말과 글이 2천년만에 다시 역전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요즘이다. 글은 한순간에 고개를 숙였으며 말은 이미지나 동영상이라는 친구까지 데려와 어마어마한 영화-게임-체험의 스토리시장의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학교에서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소리 지르는 까닭은, 글이 무너지고 일상에서 '부양하지 않으면 안되는' 대상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냉정하지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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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해도 글을 못쓰는 까닭은, 소리를 만들어 밖으로 내뱉은 뒤 사라지는 말의 특징과 글자의 표기를 떠올려 하나하나 쓰면서 행을 밀어가야 하는 글의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발음의 공명(孔鳴)이 뇌를 자극하여 이야기를 자극하는 것과, 씌어진 문자들을 바라보면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이어가는 것은 사뭇 다르다.

글은 쓰면서도 볼 수 있으며 또 쓰고난 뒤에도 남아있다. 말은 스스로 귀로 들을 수 있으나, 글은 눈으로만 볼 수 있다. 말은 말 이외의 다른 것들, 예를 들어 몸짓이나 분위기, 눈빛, 말의 억양이나 음색 따위로 풍성한 표현이 가능하나, 글은 오직 글자로만 표현되는 경우가 많고, 글자가 지닌 의미와 행간 그 이상을 드러내기 어렵다.

또 글쓰기는 말하기에 비해 시간적인 제약을 덜 받기에, 여러 가지 자료를 섭렵해 체계적으로 말하는데 유리하다. 이런 많은 차이들이 '글'의 지위를 만들어왔으며, 말 잘하는 이들이 글 앞에서 주눅드는 현상을 만들어온 점이 있다.

그러나 사실, 말과 글은 상보적인 측면도 있다. 말이 지닌 측면들이 글에도 도입되고, 글이 지닌 측면들을 말이 흉내내기도 한다. 말하듯 글을 쓰라는 뜻은, 말이 지닌 장점(쉽고 간결한 전달)을 취하려는 노력이며, 말할 때 글을 인용하고 글이 지닌 논리성을 활용하려는 것은 그 반대의 움직임이다. 지금은 글쓰기 얘기를 하는 거니까, '말하듯 글을 쓰라'는 것에 집중하여 살피자.

또 강준만교수가 데스킹을 한 글을 구경하자.

* 사례 = 대통령 탄핵 사건을 반전시킨 능력이 네티즌 스스로들의 주장이었을까? 물론 주류에 속한 네티즌들이 있을 수 있으나 비주류에 속하는 대부분의 네티즌은 전자의 입장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 사건 안에는 '위기관리 PR'의 능력을 가진 조정자가 분명히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한 '위기관리 PR'은 정적의 입장에서는 분명 포퓰리즘일 것이다.

* 강준만 고침 = 대통령 탄핵 사건을 반전시킨 능력이 오직 네티즌 자신들의 주체적 판단과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물론 처음부터 확고한 생각을 가진 네티즌들이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네티즌은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위기관리 PR'의 능력을 가진 조정자들이 개입해 여론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이끌었고, 나머지 대다수 네티즌들은 그 방향에 설득 당했다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물론 이 경우의 '위기관리 PR'은 정적의 입장에서는 분명 포퓰리즘의 일환일 것이다.

학생이 쓴 글은 '글쓰기'를 의식한 나머지, 어휘들을 남발하여 문장관계를 돌보지 않았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해주는 배려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앞세우는 바람에, 논리적인 설득력이 떨어지는 모양새가 됐다.

'반전시킨 능력이--- 주장이었을까'는 주술관계가 엉성하다. '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라고 받쳐줘야 호흡이 맞다.

주류와 비주류라는 표현도, 덜 객관적이다. 주류-비주류 대목을 더 친절하게 풀어줘서 독자들이 의미를 확실히 이해하도록 해줄 필요가 있었다. '분명 포퓰리즘일 것이다'도 '분명 포퓰리즘의 일환일 것이다'라고 슬쩍 물러섰다.

말일 경우엔 학생이 저렇게 했더라도, 옆에 듣고 있던 상대가 바로 질문을 해서 틈이 있는 주장을 정교하게 소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은 대체로 그런 피드백이 어렵다. 글쓰기를 말하기처럼 하라는 것은, 장점을 취하라는 것이지, 서로 다른 점까지도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말과 글과 관련해, 순독(脣讀)이란 개념을 알아둘 만하다. 글은 소리내어 읽는 것이 좋다.

서울대교수 김형국은 "글을 소리내어 읽은 음독이 글자와 내용을 바로잡는 교정에 효과적임은, 빼어난 선배 글쟁이들의 작업을 엿보면서 내가 익힌 바다. 음독이든 순독이든, 나는 글 고치기를 길고 짧은 글 할 것 없이 스무 번 넘게 거듭한다. 자랑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항상 어려운 도전이고 그럼에도 노력하는 만큼 좋은 글을 쓸 수 있음을 후배들에게 말해주려 함이다."

글을 읽으면 긴 문장이 호흡하기 어려움을 깨닫게 된다. 또 '해야한다' '라고 생각한다' 따위의 문장 종결 습관이 반복되는 것도 잡아낼 수 있다. 소설가 이문열은 자신의 글쓰기의 비밀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저는 지금도 독자들에게 제 글이 부드럽고 인상적으로 읽히길 기대할 때는 리듬에 맞추어서 씁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리듬이란 3-4조와 7-5조 아니겠어요? 산문에는 리듬이 필요없다고 한다면 이는 틀린 말입니다. 또 어감의 선택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꽝' '팍' '땅' 등의 소리가 문장에 들어갈 때 그 의미에 있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유발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디지털뉴스본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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