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용 콘돔 자판기가 생겼다, 웃어야 하나 눈쌀 찌푸려야 하나

OECD 낙태율 1위 한국, 전국 4곳에 설치하자 논란… '계도성 정책보다 훨씬 실효성 있을 것' 주장도

최종수정 2017.03.20 09:57 기사입력 2017.03.20 09:57 김희윤 디지털뉴스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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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전용 콘돔자판기가 등장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실제 청소년의 성문화와 사회의 보수적 성 인식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현실적 시도라는 평가와 미성년자 성관계를 장려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누군가 갈림길에서 너를 두고 가버렸고 오랫동안, 너는 뒤를 돌아본다.”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한 소녀를 묘사한 글일까 싶어 다시 살펴보니 고독과 우울의 대가, 오스트리아 시인 트라클의 문장이었다. 임신과 출산은 마땅히 축하받아야 할 일이나, 준비되지 않은 소녀에게는 분명 공포이자 절망일 것이다.

‘성춘향과 이몽룡은 16세 때 부모님 허락받고 서로 사랑했는데 왜 우린 안 돼요?’

당돌한 청소년의 질문 앞에 진땀 빼는 선생님만큼이나 성숙한 청소년의 사랑은 편의점 콘돔구매서부터 난관을 맞고, 방비 없이 치러낸 사랑의 순간은 두 줄 테스트기를 통해 재앙으로 다가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4년 조사한 19세 미만 청소년 분만·유산 통계에 따르면 분만 인원은 1,891명, 유산 인원은 338명으로 조사 기간 내 청소년 2,229명이 임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출산율 저하를 놓고 고심하는 사이 늘어나는 비자발적 미혼모 중 미성년자 비율이 절반이 넘어가는 기형적 상황에서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가 등장해 화제다. 청소년의 콘돔 구매가 법과 무관하게 불법적으로 비치며, 당사자는 곧장 문란하고 방종한 일탈 학생으로 규정당하는 사회적 인식 속에서 이 자판기는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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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충장로에 설치 된 '청소년 전용' 콘돔자판기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섹스 권장이 아니라 피임 예방이 목적

사회적 기업 인스팅터스는 최근 서울 신논현과 이태원, 광주 충장로와 충남 홍성까지 총 4곳에 청소년 전용 콘돔자판기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과거 청소년이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무료로 매달 2개씩 콘돔을 보내주는 ‘프렌치 레터’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은 바 있는 이 회사는 청소년의 콘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자판기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이에 일각에서는 청소년의 콘돔 접근성이 높아지면 섹스를 권장하게 된다는 우려 섞인 반대 목소리도 나왔는데, 당장 주요 포털 사이트에 청소년 임신을 검색하면 콘돔을 구하지 못해 비닐봉지, 랩으로 응급처치(?)했다는 사연부터 미처 피임하지 못해 임신 공포에 사로잡힌 고민 상담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더 많은 장소에서 보편적으로 콘돔을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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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지난해 배포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 지도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다수 수록되며 일선 현장에서 학생들의 비웃음을 산 바 있다. 사진 = 교육부 '학교 성교육 표준안' 중 발췌
현실적인 성교육이 급선무

보건복지부와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이성친구와의 신체접촉 가능 범위’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0% 이상이 키스, 10%가 몸 만지기, 9%가 성관계라고 답해 이미 청소년 사이에서 성관계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 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교육부가 2015년 배포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일선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비웃음을 샀을 만큼 현실에 뒤처져있는 내용이 많아 무용지물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성 충동을 피하고 예술(음악, 미술, 체육 등)로 승화하라’, ‘괴한의 습격 시 침을 흘려 혐오감을 줘라’하는 황당한 내용은 검색 몇 번에 클릭 한 두 번이면 손쉽게 성인동영상을 구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된 학생들에게는 쓸모없는 교육에 불과하다는 것. 실제 임신, 낙태, 출산, 성병 등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담은 성교육이 시급하다고 현장의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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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불법 낙태 시술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의료인 처벌 강화안을 발표한 직후 거센 반발에 시달리며 즉각 철회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불법 낙태 시술 피해 확산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가 발표한 2007년~2010년 청소년 임신과 낙태 관련 상담 사례 분석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이 임신 후 해당 사실을 알렸을 경우 성과 임신에 대해 보수적인 학교 측의 자퇴 종용으로 학습권을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이로 인해 학교를 계속 다니고자 낙태를 원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첫 성경험 평균 연령이 12.8세라는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유해환경 접촉 실태조사 결과는 그간 방관에 가깝게 이뤄진 피임교육과 청소년 콘돔구매의 어려움을 반증하고 있으며, 비자발적 임신상황에서 학업을 이어가려는 청소년의 경우 결국 불법 낙태 시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지난해 복지부는 낙태수술 집도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명시하고 해당 수술 사실이 적발되면 자격정지 1개월이던 기존 처벌 안을 1년까지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백지화한 바 있다.

이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금지는 사문화(死文化)’ 된 것이 현실이라며 복지부의 정책을 꼬집었고 여성단체연합은 지난해 10월 보신각 앞에서 ‘낙태죄 폐지 요구 집회’를 열어 현실을 고려한 낙태허용 대상 확대를 주장했다. 실제 불법 낙태 시술 후 일상으로 돌아간 청소년의 경우 제대로 된 회복 기간을 갖지 못하고 학업에 복귀함에 따른 후유증과 건강악화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보완하거나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현실적으로 전무한 상황이다.


OECD 가입국 중 한 해 35만 건으로 낙태율 1위를 기록한 우리나라는 역으로 피임실천율은 하위권에 머무르며 성문화 인식 제고가 시급한 상황이나, 비자발적 미혼모와 청소년 불법 낙태는 꾸준히 그 수가 증가하는 가운데 청소년 전용 콘돔 판매기의 등장은 여러 문제와 해답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여성가족부는 지난 2015년 ‘특수형 콘돔’을 쾌락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청소년 판매를 규제한 바 있는데, 답보상태에 머무른 청소년 성문화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문화 노출을 통해 너무도 빠르게 본질에 근접하는 청소년의 실제 성문화 사이의 갈등을 놓고 정부 정책보다 한발 앞선 민간의 노력이 더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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