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습격]갑자기 반말 할 때, 기분 나빠지는 이유와 좋아지는 이유
최종수정 2017.04.20 22:59 기사입력 2017.04.20 17:09 이상국 디지털뉴스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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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

우리 말에서 이만큼 감칠 맛나는 말도 없지 싶다.

온말이 있고 반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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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미가 도올 김용옥선생과의 일화를 공개해 화제다.(사진:SBS 예능프로그램 방송 캡처)
▶ 반말이 뭐지?

온말이란 갖춰야할 모든 격식을 갖춘 말일 테고 반말이란 그중에서 썩 필요하지 않은 군더더기를 빼고 딱 해야할 말만 하는 말일 게다.

그러니 말하기가 쉽고 편해서 좋긴 한데, 온말의 절반이 가진 기름끼들을 빼내는 순간, 그것들과 함께 빠져나가는 무엇이 있다.

레토릭의 많은 부분을 이루는 그 말들 속에는, 공사(恭辭)와 겸사(謙辭)가 살처럼 붙어 있었다. 그것들이 빠져나가니 무뚝뚝하고 건조한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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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김희선 반말(SBS 방송 캡쳐)


▶ 반말이 불쾌해질 때

반말이란 그래서 가끔 그것을 듣는 이를 불쾌하게 만든다. 그것이 의사 소통에 있어서 어떤 하자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화자의 공겸(恭謙)이 빠져 나를 무시하고 있지 않나 하는 기분 때문이다.

격한 논쟁들이 가끔 시비로 치달을 때 그 길목에는 한쪽의 반말과 그것에 대한 다른 쪽의 분개가 있다.

얻다 대고 반말이야? 라고 하는 반말은 그 전의 반말을 진압하기 위해 동원됐지만 그 말은 논쟁의 색조를 시비의 원색으로 치닫게 할 뿐이다.

계기는 반말이다. 습니다,를 삼켜버린 반말에는 상대방을 격동시키는 어감이 가끔 끼어든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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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곤 태도 논란 (출처: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

▶ 반말이 행복해질 때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그 공손한 말투를 살그머니 내려 반말을 건넸을 때, 그 달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제야 그와 나는 천사와 짐승이 아니라 따뜻한 체온과 감성을 공유한 인간의 동위(同位)가 되었구나.

반말은 존재를 평등하게 할 뿐 아니라 존재 간에 소통의 핏줄을 잇는다. 긴밀해진 관계를 느끼는 쾌감은, 그가 내게 반말을 처음 건넸을 때가 가장 컸다. 그 반말은 마치 열리지 않던 문이 열리듯 아주 조심스럽고 묵직하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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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강심장' 방송화면 캡쳐


▶ 반말의 감동을 잊어버리다


그 감미로운 어색함. 입술에서 새나온 친밀의 천사같은 반말 한 마디. 그것은 다시 나의 반말을 허용해주는 그의 관대함의 표현이었다.

가슴에 쿵쿵 동계(動悸)를 키웠던 그 말. 반말과 반말이 서로 만났을 때, 그것은 언어의 입맞춤과도 같았다.

말의 입술 속같은 부드럽고 부끄럽고 달콤한 느낌이 묘한 흥분의 회로를 이루며 두 사람 사이를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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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방송화면 캡쳐

다만 말의 절반을 솎아냈을 뿐인데, 이 놀라운 언어의 기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반말의 끝없는 설렘을 잊어버린 순간부터 나는 사랑의 미묘한 낌새들을 놓치기 시작한 건 아닐까.

그 환하고 따뜻한 친밀의 어감들이 무뎌진 순간부터 나는 뭔가 아주 중요한 것에 대한 불감증을 키워온 건 아닐까. 그리고는 반말을 저 사납고 공격적인 욕지기의 수단으로 줄기차게 타락시켜온 건 아닐까.

디지털뉴스본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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