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요일에 보는 경제사]'캐리비언의 해적'이 원래 공무원 집단?

대항해시대 국가경제를 이끌었던 첨병, 해적의 역사

최종수정 2017.04.21 09:54기사입력 2017.04.21 09:54 이현우 디지털뉴스본부 기자
(사진=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캡쳐)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보통 해적(pirate)이라 하면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온 잭 스패로우나 만화 '피터팬'에 등장하는 후크 선장 등을 떠올린다. 이들 해적 캐릭터의 공통점은 누구에게도 얽매여있지 않고 미래같은 것은 걱정하지 않는 자유분방함이다. 대양을 누비면서 약탈과 모험을 즐기고 때때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위해 좋은 일도 하는 이 해적들의 삶은 많은 현대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실제 해적의 삶은 이것과 많이 달랐다. 캐리비언의 해적들이 활약한 17~18세기, 정말로 카리브해에서 해적이 되고 싶으면 프랑스나 영국, 스페인 등 유럽 각국의 정부에 가서 허가를 받고 일종의 공무원으로서 일해야했다. 해적은 뒤를 봐줄 정부가 없이 잭 스패로우처럼 무법천지로 날뛸 수 있는 자유분방한 공간이 아니라 철저히 국가경제를 이끌던 중요한 산업 중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먼저 해적질을 하기 위해 반드시 받아야하는 허가증이 있는데, 이것을 '사략면장(Letter of Marque)'이라고 한다. 이것은 국가로부터 해적 허가를 받는 일종의 사업자 등록으로 이것을 받은 배를 사략선이라고 칭했다. 원래 사략선이란 해상방위가 미약했던 중세시대, 외국 군함이나 바이킹의 침략 등에서 민간인들이 직접 무장해 적군을 격퇴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는 특별 허가장이었으나 대항해시대 이후엔 합법적 해적사업 등록제도로 변질됐다.

대형 상선을 공격중인 사략선 그림(사진=위키피디아)
사략선 등록을 마치고 나면 투자자들을 물색해야한다. 17~18세기 서인도제도 일대와 동남아시아 말라카 일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상선들이 막대한 양의 금, 후추 등 값비싼 화물을 적재하고 돌아다녔으므로 이런 상선을 노략질하는 일은 대단히 많이 남는 장사였다. 그러다보니 국가는 물론 귀족들, 상인들까지 이 사업에 투자하려들었고, 노획한 물자를 처분하고 배당금을 분배하는 것도 합리적이었다. 각국 해군들도 물론 전시에 해적질을 했지만 이들이 노획한 물자는 대부분 고관대작들의 뇌물로 들어갔기 때문에 사략선과의 계약을 훨씬 선호했다고 한다.
투자금을 모았으면 이제 해적들을 모아야한다. 2차 창작물들이 만들어 온 해적들의 거칠어보이는 외모적 특성 때문에 해적은 보통 범법자나 무뢰배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론 일반 기업 채용이나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뽑았다.

사략선은 사업체였고 이 분야에는 '해적의 규율(Pirate Code)'이라는 공통 사규가 있었으며 해군보다도 복지나 보상이 좋았다. 전투 중 신체를 일부를 잃었을 경우 얼마를 보상해줄지 규율까지 정해져있었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보통 전직 해군 함장 출신들이 은퇴 후 선장이 되고 자기가 이끌던 수병들, 자발적으로 뛰어든 인원들, 전투 도중 포로로 잡힌 선원들까지 합쳐 해적단이 결성되곤 했다.

영국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에게 기사작위를 수여하는 엘리자베스 1세 모습 조각(사진=위키피디아)
이 해적 사업은 국가경제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고, 특히 해외 식민지 경쟁에서 후발주자에 속하는 프랑스와 영국은 사략선 허가증을 남발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상선 약탈이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영국의 유명한 해적인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의 경우엔 엘리자베스 1세에게 기사작위를 받았음은 물론 스페인과의 전쟁에서는 영국 함대 지휘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런 해적들은 유럽 뿐만 아니라 이슬람권 국가들에서도 고용돼 지중해와 유럽 전역, 아프리카, 인도양 등 세계 바다를 누볐다. 보통 우리가 영어로 해적을 일컫는 '파이러츠(pirate)'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계 사략선 중 카리브해와 아프리카 서해안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해적들을 의미한다. 이외에 프랑스 북미 식민지 일대에서 활약한 프랑스계 해적들은 부카니에(boucanier)라고 불렸다.

한편 현대에 이르러 전투기 이름에도 들어간 바 있는 커세어(corsaire)는 지중해 일대에서 활약했던 이슬람계 해적을 뜻한다. 이들은 주로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 아프리카 북부 해안일대 바르바리(Barbary)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오스만 터키제국에 고용돼 유럽상선들을 약탈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해적이었던 하이르 앗 딘(Khayr ad-din)이란 인물은 오스만 터키 제국의 해군제독이 됐으며 오늘날에도 터키 해군의 상징적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있다.

왜구의 활동범위(사진=위키피디아)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일대에서 해적이라 하면 보통 왜구(倭寇)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구는 13~16세기 동아시아 해안 일대에서 악명을 떨친 해적들을 통칭하는 말로 사실 일본인 외에 조선인, 중국인 등 구성이 다양한 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보다 앞서 통일신라 말기인 7~9세기 경에는 신라구(新羅寇)가 악명을 떨쳤단 기록도 있는데 신라구들은 신라 본토 해안 뿐만 아니라 규슈, 쓰시마 등 일본 열도 일대까지 쳐들어가 약탈했다. 이런 배경에서 해적소탕을 위해 청해진을 설치한 장보고(張保皐)가 등장하게 된 것.

하지만 이 해적들은 공통적으로 국가가 이들을 버리면서 모두 사라지게 된다. 국가경제의 첨병으로서 지원해주며 사략선 허가를 내줬던 그 국가가 이들을 적으로 선포하면서 모두 토벌된 것. 19세기부터 자유무역시대가 열렸고 선박 운송을 자국 배에게만 허가하던 폐쇄적인 보호무역조치들이 깨지면서 해적산업은 더 이상 불필요한 사업으로 전락했다. 이제 국가는 더 이상 해적을 용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후 1850년대부터 증기선이 개발되고 각국의 해군이 해적집단으로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해군력을 가지게 되자 모두 소탕됐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코딩리(David Cordingly)의 말처럼 "어디까지나 해적이라는 것은 국가가 인정할 때나 활동이 가능"했던 사업에 불과했다. 결코 자유로운 영혼들이 아니었던 셈이다.

디지털뉴스본부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0 목록보기 플친추가

프리미엄 인기정보

리더스경제신문많이 본 뉴스더보기

  1. 1강인, 잘못 인정하고 용서 빌어...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에 대해 거듭 사죄
  2. 2강용석 변호사 아들의 돌직구 발언 "아빠 굴곡 있는 인생 닮기 싫다" 재조명
  3. 3도도맘 김미나, 화장 지우니…세련된 용모와는 사뭇 다른 모습
  4. 4한송이 가족 공개, 누구 닮아서 예뻤나 봤더니...엄마와 극장 데이트 중 찰칵
  5. 5류여해 ‘포항 지진 발언’ 논란, 이현종 논설위원 “‘지진’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이런 행태는 굉장히 부적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