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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동성애자 차이콥스키의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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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동성애자 차이콥스키의 절망 이채훈 클래식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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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멜로디의 천재' 차이콥스키(1840~1893)는 동성애자였다. 그는 페테르부르크 법대 시절의 동창부터 만년에 사랑한 조카 다비도프까지 평생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지울 수 없었고, 이 때문에 괴로워했다. 현대 생물학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의 일부 개체에 나타나는 동성애 성향이 "옳다, 그르다" 또는 "좋다, 나쁘다"고 판단할 수 없는 선천적 특징임을 밝혀냈다. 그러나 19세기 러시아는 동성애자를 시베리아 유형을 보내야 할 죄인으로 간주했고, 차이콥스키도 이를 도박이나 마약 같은 '몹쓸 습관'이라 여기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차이콥스키의 모든 사랑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었고, 이 점은 그의 음악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그의 첫 관현악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은 원수 집안 젊은이들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그렸다. 차이콥스키는 안토니나 밀류코바라는 여성과 결혼한 적이 있다. 모스크바 음악원의 제자였던 안토니나는 그에게 열렬한 연애편지를 보냈고, 결혼해 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앞날이 창창한 여성이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그는 결혼에 동의했는데, 자기의 동성애 성향을 뜯어고칠 계기로 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한 순간부터 죽고 싶어진 사람은 차이콥스키 자신이었다. 그는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했지만 몸살에 걸렸을 뿐이었다. 6주 만에 그녀를 피해 스위스로 도망친 그는 평생 이혼도 못한 채 살아야 했다.

차이콥스키는 마지막 작품인 교향곡 6번 <비창>의 초연을 지휘하고 9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페테르부르크 법대 동창의 아들과 사랑한 사실이 세상에 폭로될 위기에 처하자 이를 수치스럽게 여긴 동창들이 명예재판을 열어서 음독자살을 강요한 것이었다. 비창을 작곡할 때 그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차이콥스키는 쓰디쓴 사랑의 좌절을 아름다운 멜로디로 승화시켜 우리에게 걸작을 남겨줬다.


2010년,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아르헨티나를 취재한 적이 있다. 크리스티나 대통령이 카톨릭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 법안에 서명한 직후였다. 내가 만난 세 커플은 한결같이 행복해 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아이를 낳을 것도 아닌데 왜 결혼을 원하는 거죠?"라고 묻자 그들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결혼 안 할 자유와 결혼할 자유를 (이성애자와) 똑같이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시민권을 제한하면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취지였다. 카메라 앞에서 애정 표현을 해 달라고 요청하자 그들은 서슴없이 다정하게 키스를 나눴다. 이성애자의 키스와 똑같이 마음이 담긴 자연스런 행위였다.


대선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유력 대선 후보가 기독교의 표를 의식해 "동성애자를 반대한다"고 공언해 비판받았다. "차별에 반대한다"고 덧붙이며 서둘러 무마에 나섰지만, 동성애자들은 자기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지는 듯한 좌절과 슬픔을 이미 맛본 뒤였다. 돼지 흥분제로 강간을 모의한 자가 "동성애자들을 엄벌하겠다" 운운한 것은 너무 저급하니 대꾸할 가치가 없다.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후보라면 소수의 아픔을 위로하고 함께 해야 옳지 않을까? 소수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소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 전체의 문제다. 표를 의식해서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기보다, 용감하게 진실을 얘기하고 반대자를 설득하는 감동의 리더십을 보여 줄 후보는 없을까? 동성애자를 대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은 차이콥스키가 살았던 19세기 러시아보다 그다지 나아 보이지 않는다.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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