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새 정부, 푸른 의지를 본다
최종수정 2017.05.19 10:45 기사입력 2017.05.1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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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소설가
비로소 나무들이 초여름의 산과 거리에서 초록의 세월을 살고 있다. 혹독했던 겨울과 변덕스런 봄을 잘 견뎌냈음이다. 껍질도 잎도 거칠게 보이는 것은 침엽수고 부드럽게 보이는 것은 활엽수다. 그런데 국제 관례는 침엽수를 '소프트 우드(SW)'로, 활엽수를 '하드 우드(HW)'로 표기한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나무의 겉모습과 국제표기가 반대로 된 것 같아서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사람이 나무의 겉과 속이 아주 다른 사실을 환히 알고 있어서다. 침엽수의 속살은 매우 부드러워 손톱으로 살짝 누르기만 해도 상처가 생길 정도지만, 활엽수의 속살은 퍽이나 단단해서 도끼질을 해도 날이 바로 먹히지 않는다. 이유는 나무가 생물이라는 데 있다. 겉을 위장해 속을 보호하면서 제 가치를 높이려는 지혜다. 사람은 이 사실을 편의와 이익을 위해 잘도 활용해 왔다.

사람도 생물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은 진작에 아주 진부한 표현이 돼 버렸다. 그만큼 사람의 겉과 속은 같기 어렵다는 말을 하고 있음이다. "몸의 털과 피부는 부모한테 받은 것이니 소중이 여겨야 한다"는 말을 따르던 시절을 기억한다. 겉을 보면 속이 빤하다는 가르침이었다. 허나 벌써부터 이 말에 머리를 저어왔다. 속고 또 속아봤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무와 다른 점이 한 가지가 있다. 사람이 맘만 먹으면 살아서도 속을 다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어렵지만 언제든 어디서든 가능한 일이다.
새 대통령이 뽑혀 급하게 일을 시작했다. 그 일을 맡기 위해 오랫동안 얼마나 애를 써왔는가. 현재까지 보여준 몇 가지 모습은 꽤 보기에 좋다. 낮은 자세와 소통을 위한 행보는 누구와 비교가 돼서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의 속을 솔직하게 다 보여주었는지 아직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나하나 다 세기도 어려울 만큼의 약속들이었다. 혹시 울지도 않는 애를 지레 찾아내서 대책없이 젖을 주겠다는 식으로 해놓은 약속들은 없는 것일까. 박수 치고 환호해야 할 때에 걱정이 꼬리를 무는 까닭은 무엇인가. 몇 번씩이나 놀란 가슴이 영 진정되지 않아서다.

그 약속들은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한 뒤에 방명록에 남긴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대통령"이란 다짐으로 마무리됐다. 일단 모두가 이 약속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함께 해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5년의 세월 뒤에 떠나는 뒷모습이 모처럼 아름다울 것이라 믿고 또 믿어야 한다.

대통령 언저리에 있는 자리들에 금세 사람이 들어가 앉았다. 앞으로도 많은 자리에 사람들이 앉을 터이다. 그이들의 속을 제대로 읽었다 하여 믿고 앉힌 '틀림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사람의 속은 곧잘 조화를 부리는 특성을 갖고 있다. 사람한테 하나 더 있는 나무와 다른 점이다. 유리해지면 일부러 찾아와 생색을 내지만 불리해지면 꼬리를 내리고 시치미를 뗀다. 그리고는 잊었다고 죽어라 우겨댄다. 그래서 사람의 일이라면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낭패를 보면서 살아온 세월이 참으로 길었다.

그래도 이제는 다시 믿음이다. 5년 세월이 100년 세월을 기약해 청사에 더할 수 있게 된다고 믿어야 한다.

한여름을 향해 가는 나무들을 본다. 저 아래로부터 차오른 수액이 나무의 심장인 심부에서 쉼없이 흐르는 맑은 소리를 듣는다. 설혹 늦여름에 태풍을 맞아 한순간에 뿌리째 뽑혀 나간다 해도, 성실하고 진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겠다는 푸른 의지를 본다. 늦가을에 잎도 열매도 다 내주고서 의연하고 당당하게 서있는 그리고 겨울을 기다리는 나무들의 모습을 그린다.

이상문 소설가ㆍ前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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